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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선수 이야기

과거 PGA 최고의 장타자이자 그린의 풍운아, 존댈리

by 21세기청년 2020. 10. 31.

오늘 소개할 선수는 한때 PGA 최고의 장타자이자 필드 위의 악동이라 불렸던 존 댈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66년 4월 출생인 존 패트릭 댈리는 5살부터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건설 노동자로 일하면서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요. 그가 4살이 되던 해에 아칸소 주 다르데넬로 이사하였고, 거기에 위치한 골프 클럽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린의 풍운아 존댈리

어린 시절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잭 니클라우스를 동경하던 존 댈리는 13살 지역 스프링 클럽 내에서 열린 챔피언십 대회에 나가 성인 남성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그 덕분(?)에 클럽에서는 주니어는 제외하고 참가하는 것으로 규정을 변경했다고 하네요. 

 

전설적인 PGA 장타자 존댈리

 

그의 고등학생 시절인 1983년에는 미주리 주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고, 그다음 해에 열린 아칸소 주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4년 아칸주 대학에 골프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87년 대학 학위를 포기하고 프로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는 미주리 오픈 대회에서 첫 우승을 하였고, 근 3-4년 동안은 미국 내 중소규모의 골프 대회에 참가하면서 프로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1991년 생애 처음으로 PGA 투어에 참가하게 되었는데요. 그해 열린 메이저 대회 PGA챔피언십에서 닉 프라이스라는 선수가 불참하는 바람에 대신 출전하게 되면서 브루스 레츠케를 3타 차로 따돌리며 우승하였고 이는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해 PGA 투어 신인왕은 그에게 돌아갔지요. 

 

 

180cm의 키에 110kg이 넘는 뚱뚱하고 거대한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은 부드럽고 유연한 스윙으로 엄청난 장타를 날리는 그를 사람들은 롱 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처음 투어에 참가하 1991년 이후부터 12 시즌 동안 드라이버 티샷 비거리 부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자유분방한 모습과 화려한 패션으로 필드에 나서면서 대중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지요.

 

1995년에는 또 다른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쉬 오픈 (디 오픈)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면서 화려한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PGA 투어 통산 5승을 달성했는데 두 번이 1991년과 1995년 우승한 메이저 대회였습니다.

이처럼 PGA 투어에 참가하자마자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고 또 다른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뛰어난 실력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은 선수였지만, 자유분방하고 기분파였던 그의 성격으로 인해 많은 구설수에 오르며 골프계의 악동으로 불렸습니다. 

 

 

담배를 입에 물고 필드에서 스윙하는가 하면 캘러리가 플레이를 방해했다고 하여 갤러리의 카메라를 부서 버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경기가 잘 안 풀리면 클럽을 해저드에 던져버리거나 아예 경기장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고요.

한 가지 유명한 일화로 2011년 원 아시아 투어 호주오픈 대회에 참가했는데 근처 연습장에서 날아온 볼을 자신의 볼이라 착각하고 치는 바람에 2벌타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흥분했던 탓에 다음 홀에서 무려 7개의 볼을 연속해서 해저드에 빠뜨렸는데 더 이상 칠 공이 없다고 하면서 시합을 포기하고 떠났다고 하네요.   

 

골프 필드위의 악동 존댈리

 

존 달리는 골프 외에 사생활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3번이나 요양시설에 입원하기도 했고, 도박에 빠져 수천만 달러를 탕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카지노에서 날밤을 새고 난 뒤 다음날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무려 4번이나 이혼당하며 불안정한 개인사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방탕한 사생활을 보내면서 골프에 집중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그의 많은 기행으로 인해 PGA 사무국으로부터 수많은 경고 및 근신 처분 등을 받으면서 대중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되지요. 

 

그린위의 반항아 존댈리

 

2004년 뷰익 인터내셔널 대회 우승을 끝으로 PGA 투어 우승과 더 이상 인연이 없었지만, 특유의 스윙과 장타로 인해 여러 투어에 초청받아 출전하면서 연간 5-6백만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한 인기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하였음에도 방탕한 사생활과 기행으로 인해 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이제 50대에 접어들면서 시니어 투어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PGA 투어에서 볼 수는 없지만 그간 자신의 철없는 행동을 반성(?)하는 듯한 제스처와 함께 골프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아들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가 어떤 행보를 걸을지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