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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브랜드 이야기

캘러웨이(Callaway)의 역사

by 21세기청년 2020. 8. 12.

지난 시간에는 테일러메이드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테일러메이드와 함께 드라이버 클럽에 있어 경쟁 관계에 있는 캘러웨이 브랜드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캘러웨이는 이름 그대로 창립자인 엘리 캘러웨이의 이름을 따서 설립되었습니다. 그는 골프와 전혀 무관하게 미국 최대의 섬유업체 벌링턴 기업의 사장이기도 했고 퇴임 후에는 와인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던 인물이었는데요. 은퇴 이후 골프로 소일거리를 하다가 1982년 작은 골프용품 회사였던 히코리 스틱이라는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게 됩니다.

 

경영란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 회사의 지분을 2년 뒤에 남은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캘러웨이 골프로 네이밍 하면서 캘러웨이 브랜드의 역사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캘러웨이 스토리

엘리 캘러웨이는 획기적인 신제품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전 회사의 소유주였던 딕 델라크루즈와 당구 업계에서 유명했던 리처드 햄스테더를 비롯 우주 항공공학과 금속공학에 일가견 있는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하여 클럽 개발에 합류시킵니다. 그리하여 골프업계 최초로 컴퓨터 수치제어 밀링머신을 설치하고 CAD 시스템도 도입하여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후 1988년 S2H2 아이언을 내놓는데 이 제품은 골프 클럽의 헤드의 호젤과 넥 길이를 짧게 하고 헤드 안쪽에 구멍을 내어 샤프트를 연결하는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헤드의 무게 중심을 낮춰 공을 띄우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신기술을 적용한 아이언과 우드가 인기를 끌면서 회사의 매출을 상당히 높이는 결과를 낳았는데요.

 

 

이를 발판 삼아 1991년 캘러웨이라는 브랜드의 최대 흥행작 중 하나인 빅버사 드라이버를 출시합니다. 빅버사라는 이름은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초대형 대포 이름인데 기존 드라이버보다 30% 이상 헤드가 커져서 페이스를 넓혀 관용성을 높였기 때문에 당대 최고의 히트작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당시 드라이버 시장 1위였던 테일러메이드를 제치고 1993년 골프용품 업계 매출 1위를 달성하게 됩니다. 테일러메이드와 경쟁하면서 드라이버 헤드 크기를 키우면서 신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애썼고  더욱더 성능 좋은 골프채를 양산하게 됩니다. 

 

캘러웨이 로고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캘러웨이는 1996년 엘리 캘러웨이가 CEO에서 물러나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 경기침체와 맞물려 골프용품 매출에 타격을 받습니다. 게다가 경쟁사인 테일러메이드의 약진과 신생회사들의 출현으로 인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게 되지요.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1997년 최대 퍼터 메이커인 오디세이 골프를 인수하여 퍼터 전문 브랜드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집니다.  게다가 1998년에는 빅버사 드라이버에 이어 X시리즈 특히 X-12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무게 중심을 헤드 바깥으로 배치한 캐비티형 디자인에 얇은 페이스면 기술로 반발력과 관용성을 높여 골퍼들에게 극찬을 받은 스틸 아이언 제품으로 미국에서 출시 3주만에 10만 세트가 판매되었다고 하네요.

 

 

이를 바탕으로 조금씩 경영란에서 벗어나던 캘러웨이 골프는 2000년 엘리 캘러웨이가 다시 복귀하여 위기를 수습하고 일본에서 개발한 티타늄 단조 가공기술을 토대로 페이스면을 만들어 반발력을 높인 ERC 드라이버를 출시하게 되는데요. ERC는 엘리 캘러웨이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일 만큼 큰 애착과 기대감을 가진 캘러웨이 골프 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라는 대로 높은 판매를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 골프 협회에서 캘러웨이의 ERC드라이버의 페이스 반발계수를 문제 삼아 투어 경기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그로 인해 골퍼들이 기피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매출의 급감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이후 2001년 테일러메이드 측에서 R300Ti 제품과 R500 제품 등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는 등 대대적인 공세에 결국 1위 자리를 내주고 마는데요.

 

절치부심한 캘러웨이는 2005년 빅버사 FT-3 드라이버를 출시하는데 460cc가 넘는 크기와 구질 변화를 줄 수 있는 기술이 접목되어 많은 주목을 받게 되고 캘러웨이 소속이었던 당대 최고의 여자 골퍼 애니카 소렌스탐이 이 드라이버를 사용하여 투어 우승을 하면서 많은 골프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이 골프채는 카본 복합소재가 많이 적용된 드라이버였는데 그동안 카본 소재에 대해 거부감이 많았던 골퍼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준 계기가 된 제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인수한 오딧세이 퍼터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며 화이트 핫 시리즈와 투볼 퍼터를 발표하면서 히트 쳤고, 밥 보키와 함께 웨지의 거장으로 알려진 로저 클리브랜드를 영입하고 필 미켈슨을 개발에 참여시키는 등 웨지 분야도 시장 점유를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캘러웨이 골프를 창립하여 골프 역사의 한 획을 긋고 발전시킨 앨리 캘러웨이는 2001년 5월 82세 나이로 췌장암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비롯 늦은 나이에 골프 비즈니스에 뛰어들었지만 그의 높은 사업수완과 신기술 개발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골프용품 토털 브랜드가 되었으며 2020년 현재 최고의 골프 클럽 브랜드 1위에 올랐습니다. 

많은 골퍼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이상 캘러웨이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