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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선수 이야기

탱크 최경주 프로 히스토리

by 21세기청년 2022. 8. 8.

이번 포스트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골퍼이자 살아있는 전설 '탱크' 최경주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002년 PGA 컴팩 클래식에서 한국인의 최초 PGA 우승한 골퍼. 100년이 넘는 PGA 역사에서 최경주의 우승은 올림픽 금메달과 맞먹는 가치 있는 우승이었습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9월 템파베이 클래식 우승으로 한 해에 2승을 거두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PGA투어에서 8승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는데요. 과연 그의 골프의 시작과 그간 히스토리는 어떠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탱크 최경주 프로 히스토리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

1968년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난 최경주 선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밝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축구와 씨름, 창던지기 등 또래 아이들에 비해 여러 운동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역도부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하체 힘을 잘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훗날 골프 선수로 활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완도 수산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그는 똑같이 역도부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담당 체육 교사는 10명의 지원자 중 5명에게 골프부로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중에 최경주 선수가 속했고 이것이 계기되어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이른 나이에 시작한 것과 비교했을 때 꽤 늦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한 셈이지요.

 

당시 완도에 유일한 골프 연습장이 있었는데요, 철망도 없고 잔디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손님이 없는 날 하루에 4,000개의 공을 때리며 연습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연습이 끝난 후에는 손이 제대로 안 펴지고 군살이 손 전체에 퍼질 정도였다고 하네요.

 

골프를 시작한지 석 달만에 광주 근교에 있는 9홀짜리 골프장에서 첫 라운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골프연습장 사장님의 도움으로 1주일에 2번씩 고향 선배였던 프로 골퍼들로부터 전문적인 지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독한 연습벌레였던 최경주 선수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벙커샷 연습을 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골프를 시작한지 1년쯤 되던 어느 날 우연한 인연으로 인해 서울에 있는 한서고등학교로 전학가게 되는데요. 최경주 선수의 인생 터닝 포인트였던 그 인연은 바로 한서고등학교의 김재천 이사장이었습니다. 

 

김 이사장은 1987년 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 시간이 남아서 완도항 근처의 골프 연습장에 방문했는데요. 거기서 연습하고 있던 어린 최경주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는 나이가 어렸음에도 성인 못지않은 엄청난 장타를 떄리는 최경주 선수를 보고는 단번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그를 전학시킵니다. 

 

이후로 최경주 선수는 한서고등학교에서 3년동안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업과 함께 골프를 병행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프로골퍼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칩니다.

 

 

프로선수가 된 완도 소년

1993년 프로 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하고 골프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프로골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국내외 정상급 프로 선수들이 참가한 팬텀 골프 대회에서 프로 첫 우승을 하게 됩니다.

 

이 우승을 계기로 상금 랭킹 7위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국내 골프계에 알렸고, 이듬해 96년 그리고 97년 2년 연속 상금 랭킹 1위에 오르며 국내 무대를 단숨에 평정하게 됩니다. 

 

국내 무대를 제패하고 난 최경주 선수는 이제 해외 진출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 출발선은 일본 투어 대회였습니다. 일본 진출 첫해인 1999년 기린 오픈과 우베 코산 오픈 2개 대회를 우승하며 국제 대회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하였습니다.

 

미국에서도 통할 것이다 확신한 최경주의 팬들은 후원회를 조직하여 최경주 선수가 미국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후원금을 모아서 그를 지원했고, 그들의 바람을 업은 최경주 선수는 미국 PGA투어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PGA 투어에 도전하다

가장 먼저 그는 PGA투어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는 퀄리파잉 스쿨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퀄리파잉 스쿨에서 최종 35위까지만 다음 시즌 PGA 투어 참가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에 후원금 등으로 정착한 최경주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35위로 가까스럽게 통과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에 입성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PGA투어에 입성할 때만 해도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큰 기대보다는 우려를 많이 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 더 넓게는 동양인으로써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던 PGA 투어에서 멋진 활약은 고사하고 금방 돌아올 것이다, 실패할 것이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경주 선수는 남들보다 2배 이상 연습하면서 꿋꿋하게 PGA 무대에서 살아남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골프 기량보다는 언어와 문화 장벽에 가로막혀 번번히 컷 탈락이 계속되었고, 그 해 상금랭킹 134위를 기록하며 다음 해에 PGA투어 참가자격을 다시 얻기 위해 퀄리파잉 스쿨을 재도전해야만 했습니다.

 

최경주 선수는 심기일전하여 다시 PGA 투어 자격을 얻었고, 2001년부터는 꾸준하게 PGA투어에서 생존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PGA 투어에서의 활약

그 결과 2002년 5월 컴팩 클래식에서 한국인으로써 사상 첫 PGA 투어 우승을 달성하며 대한민국의 골프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빠르고 단단한 그린에도 흔들리지 않는 퍼팅이 그의 우승을 견인하는데 일조하였지요.

 

같은 해 9월 PGA 템파베이 클래식 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최경주 선수의 선전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투어 2승으로 220만 달러 상금을 벌었고 상금 랭킹에서도 17위에 오르면서 2002년을 생애 최고의 한 해로 만들었습니다. 

 

이듬해 1월 출전한 PGA 메르세데스 챔피언십에서도 준우승에 오르며 반짝 스타가 아님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에 열린 마스터즈 토너먼트에 출전하면서 첫 메이저 대회 신고식을 치른 최경주 선수는 타이거우즈와 함께 공동 15위로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대회 성적으로 메이저 대회에서도 우승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5년에는 그린스보로 크라이슬러 클래식, 2006년 크라이슬러 챔피언십, 2007년 메모리얼 토너먼트와 AT&T 내셔널, 2008년 소니 오픈으로 매년 1승 이상을 따내며 PGA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PGA 투어 대회에서 마지막 우승은 흔히들 5번째 메이저 대회라고 불리기도 하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대회였습니다. 

 

최경주 선수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에 정착했을 때, 그는 대회가 열리는 TPC 소그래스 홀에서 연습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때 그는 골프장에 각 나라 우승자들의 국기가 항상 계양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국기들을 바라보며 '내가 저기에 대한민국 국기를 올리겠다.' 하고 다짐을 했었다고 하는데 그의 바람대로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대회는 그의 인생사에서 가장 극적인 대회였는데요. 선두였던 데이비스 톰슨 선수를 따라 잡으려는 상황에서 톰슨 선수의 실수로 인해 연장전까지 진행되었고 마지막에 주인공인 된 사람은 최경주였기 때문입니다.

PGA 투어 통산 8승과 함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초의 아시아인이 되었지요.

 

PGA 챔피언스 투어 우승 최경주 프로

 

한 시대를 풍비한 대한민국 전설

아쉽게도 그 이후 PGA투어에서 그의 우승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매년 꾸준하게 PGA 투어에 참가하긴 했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 등으로 인해 컨디션이 저하되었고 로리 맥길로이, 저스틴 토마스 등 신예 천재골퍼들의 등장으로 그가 우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상징으로써 한국의 여러 후배 선수들과 함께 매년 투어 대회를 뛰면서 많은 골퍼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22년 현재는 나이가 많아서 시니어 골퍼들이 활동하는 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약중입니다. 2020-2021 시즌 퓨어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하였는데 이 역시 한국인 최초로 PGA 챔피언십 투어에서 우승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제 선수 생활뿐만 아니라 자신의 프로 선수 경험을 살려 많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는 중이면서 여전히 대한민국 골프의 선구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경주 선수의 장점

최경주 선수는 탱크라는 별명답게 다부진 체격과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공을 시원하게 날릴 수 있는 드라이빙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의 전성기 시절 PGA 투어에서도 주목할만한 장타자로서 긴 비거리와 함께 볼 컨트롤이 우수해서 세계적인 골퍼들과 견주었을 때 단연코 스탯이 높은 선수였습니다.

또한 아이언 샷은 스핀량이 좋아 정확한 샷이 또 다른 장점으로 꼽혔던 선수입니다.

 

대한민국 골프 선구자 

최경주 선수는 대한민국 골프의 선구자, 개척자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미국 PGA투어에 도전장 내밀었었고, 21년간 투어 선수로 활동하면서 8승이라는 기록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임성재, 김시우 같은 젊은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고 여러 승수를 쌓고 있어서 8승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으로서 세계무대는 큰 장벽이었기 때문에 그의 8승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폄하될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이 없다는 점인데요. 그럼에도 대한민국 골프 역사에 최경주 선수는 영원한 메이저급 선수로 이름에 남을 거라 생각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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